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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KLFA-LKFA 정기총회 참관 이야기.라오스여행기 2부(황금빛 향으로 사르는 기도)
라오스 여행기 제 2부
(황금빛 향으로 사르는 기도)
운영위원 이순애
맹학교에서 나와 21명 일행은 두 팀으로 나뉘어졌다,
한 팀은 비엔티엔에서 머물면서 분컷 외무부 차관님 초청 만찬에 참석하는 등 일정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우리팀은 9명으로 라오스 정부에서 제공한 12인승 미니버스를 타고 방비엥을 거쳐 루앙프라방으로 가기로 했다. 방비엥을 거치지 않고 국내선 비행기를 타면 편리하다지만 고산지대 생활모습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고 싶었다. 단장이신 홍순유 부회장님은 젊은 시절 루앙프라방에서 7년 동안 공사 현장소장으로 일하셨기에 현지사정에 밝으셨다. 기사는 (후앙엥/산업성 공무원)으로 후리후리한 키에 날씬한 중년 남성이었다.
비엔티엔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길, 네 시간 산골짜기를 감싸는 숲길을 따라 달렸다. 길 옆 숲에서는 파인애플, 바나나, 파파야의 초록 잎사귀가 큰 키를 늘이며 일행을 보려고 발꿈치를 높였다. 산악지대에서 차는 아찔아찔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했고 험한 길도 있었다. 지루할 때나 기사가 졸릴 때면 김성중 경위의 장내 아나운서 멘트나 유머가 등장하여 유쾌하게 예스 예스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길을 따라 이어진 고산지대 집들과 마을사람들과 아이들은 우리에게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그들에게 우리도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구불구불 길을 닮은 수많은 사연들이 햇빛을 끌어안고 반짝이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쌀국수를 먹고, 바나나 튀긴 음식, 커피를 마시고 쉬엄쉬엄 방비엥으로 넘어갔다.
방비엥에서 한국인부부가 운영하는 (숙솜분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이모님 이게 얼마만이야? >김성중 경위님이 천연덕스럽게 너스레를 떨자 잠시 기억을 찾느라 얼떨떨해하는 사장님 표정이라니. 말레이시아에서 오래 하던 사업을 접고 일산에서 살다 여행하던 중 방비엥의 노을에 빠져 덜컥 게스트하우스를 하게 되었다는 부부 이야기가 재미있다. 돈을 벌기보다는 소일 삼아 시작한 일이지만 생각보다 얼마나 힘드는지 고달프지만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여행자와의 약속 때문에 그만두기가 어렵단다. 더구나 라오스의 화폐단위가 워낙 커서 받을 때는 이렇게 많은 돈을 받나 손님들께 미안하지만 달러로 환산하면 얼마 되지도 않는다고. 실제로 1달러가 8,000킵이나 되니 소비자의 체감물가와 다를 수 밖에. 또한 방비엥의 숙박료는 루앙프라방의 30% 정도로 저렴하고 물가도 싸서 가히 여행자의 천국이라 불릴만했다. 며칠만에 제대로 된 한국식 된장찌개와 해물탕으로 저녁을 들었다. 라오스 북부에서만 생산된다는 흑생강 말린차를 대접하며 고향의 정을 느끼게 해주신 여사장님의 인심이 푸근했다. <영업한지 6개월이 지났다니 남은 2년 반 안에 꼭 다시 찾아 갈게요. > 말린 흑생강이 관절염과 전립선에 특효라는 사장님의 경험담을 듣고 고가임에도 사 가지고 귀국하여 목하 시음중! 다섯 번을 우려내 마셔도 된다는데 결과는? 푹 끓이면 생강냄새가 전혀 안 나고 맛은 약간 쌉쌀한 검은 물인데 아직 지켜 볼 일이다. 생강이 많이 나는 지역이라서 생강 들어간 음식이 많았다.
방비엥에서는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블루라군과 탐짱동굴을 찾았다. 사다리를 타고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 속으로 다이빙을 하는 블루라군은 여름엔 대기순서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단다. 많은 유럽인들이 나무 위에서 옥빛 물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우리는 아찔한 공포와 추위 때문에 뛰어내릴 엄두를 못 냈다. 그러나 대한민국 경찰의 자존심을 건 김성중 경위님이 그냥 있을 수 있나.
가장 높이 제일 멋지게 야호!를 외치며 세 번이나 다이빙에 성공,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겨울에 무리는 금물!!! 발가벗고 오랜 시간을 수영한 탓에 저녁부터 감기에 걸려 고생을 하셨으니 어쩌나.
방비엥에는 동굴이 많아서 동굴 구경만해도 끝이 없다지만 블루라군과 붙어있는 탐짱동굴만 구경했다. 가파른 계단을 10분쯤 올라가면 시내 전체를 전망할 수 있어 좋았다. 석회암 동굴로 코끼리의 코처럼 석주가 있어 탐짱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와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외세의 침입을 피해 숨을 수 있는 피난처 구실을 했다니 민족의 비애와 두려움과 간절함과의 관계를 생각하니 서글펐다. 내려오는 길 매표소 근처에서 팔찌를 사 손목에 엮는 황경옥회원님의 모습에서 그녀만의 여행자 취향이 느껴졌다. 어둡고 미끄러워 좀 위험하긴 하지만 탐사의 묘미가 있어 강력 추천.
다음날 방비엔을 떠나 루앙프라방으로 향했다.
라오스 600년 동안의 수도이며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여행의 백미라하여 기대가 컸다. 대관령 고개를 몇 개 넘는 기분으로 6시간( 비엔티엔에서 10시간 정도)걸렸다. 우기가 아니어서 고산지대 생활상도 관찰하고 숲 속 풍경을 음미하는 것도 좋았다.
마을의 집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지없이 소박하고 허름한 집이지만 벽을 전부 대나무로 짜서 만든 모습이 이채로웠다. 대나무는 가볍고 질겨서 생활에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집 짓는 재료, 농기구, 밥그릇으로...
해발 1800m 고지에 있는 푸피양파 휴게소에 들러 빽빽이 몇 겹이나 두른 산골기를 바라보았다. 휴게소 근처 산악 도로에 반군 게릴라가 출몰해서 버스가 테러 당했다는 소문이 날만큼 깊은 산골짜기였다.
버스가 커브길을 돌다 앞차와 충돌하여 사고가 나는 광경도 목격했다.
주말이라서 마을에서 열리는 결혼식도 많았는데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신건주에서 닭고기 삶은 국물을 넣은 쌀국수로 점심 식사를 했다.
(보 싸이 뺑누아 -조미료를 넣지 마세요) 우리는 가는 음식점마다 이 말을
사용했다. 라오스에서도 조미료를 많이 넣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음식점 벽면을 사진틀에 넣어 걸어놓은 가족사진으로 채운 소박한 집들.
어릴적 시골에서 집집마다 흔히 보던 우리네 풍경이었다.
그래도 신건주는 20여전부터 베트남 사람들이 도로공사를 하느라 건축경기가 활성화되면서 번성하여 집집마다 자가용을 두 대씩 굴릴만큼 부유한 마을이었다.
고개를 넘으니 갑자기 딴세상이 펼쳐졌다.
붉은 지붕 정돈된 시가지, 고풍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인 광경,
해발 고도 700m 쾌적한 위치에 프랑스 식민 시절의 건축이 동서양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은 라오스 최초의 통일왕국인 란쌍(Lane Xang)의 수도로 정치와 문화, 종교의 중심지였고 지금도 최고의 도시였다. 오후 시간인데도 유럽풍 카페에는 여행자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서둘러 메콩강가로 내려가 전세 보트를 탔다.
해지기전 다녀와야 할 <팍우동굴>이 있기 때문이었다.
라오맥주를 마시며 황토빛 강물을 거슬러 북쪽으로 올라갔다.
황토빛 물에 실망하는 우리를 송인순 이사님이 위로해 주셨다.
우리나라 서해안이나 마찬가지로 더러운 물이 아니라 황토에 씻겨 내려오기에 색이 파랗지 않을 뿐이라고. 어머니의 강이라 일컬어진 이유를 실감할 만큼 강을 따라 마을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아늑하고 정겨운 마을과 산과 농경지가 평화롭게 일상을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모래톱이 길게 쌓여있는 모습을 처음 봤다.
인상에 남는 건 또 하나.
바닷물에 씻겨 뿌리를 드러낸 채 기어오를 듯 하늘을 행해 뻗어있는 아름드리 나무였다. 거센 파도에 씻겨 뿌리가 드러나도 잎을 피우며 가지를 키우는 생명에의 외경을 확인하니 저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잠깐 배를 타는 줄 알았는데 가도 가도 운전사는 계속 운전을 했다. (노를 젓는 게 아니다).두 시간 이상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팍우동굴 입구>에서 내렸다.
라오 맥주를 마신데다가 배를 오래 타느라 화장실이 급한 일행이 화장실을 찾아 허둥지둥 돌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진풍경. 그런데 입장료 2,000킵을 받는 다니까 남성들은 하나같이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런 줄 알았으면 가파른 계단을 괜히 왔잖아, 투덜두덜... 그러나 입장료는 사실 260원밖에 안 돼요...
상어처럼 입을 크게 벌린 동굴, 루앙프라방에서 25㎞ 떨어진 오우강 입구에 있는 절벽 동굴은 4천 여개의 불상이 있어 '불상 동굴'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동굴은 두 개였다. 아래쪽을 '탐 띵', 위쪽을 '탐 품'이라 불렀다. 탐 품 안은 너무 어두워서 입구에서 전등을 빌려 들어가야 했다. 아기자기 손가락만한 불상에서부터 황금색 사리를 걸친 불상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내려다보는데 이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인간의 염원과 기도는 이렇게 애절하고 끝이 없이 절대자를 향하는 것일까..
돌아오는 배는 속력이 빨랐다.
올라갈 때는 두 시간 이상 걸렸지만 내려 올 때는 한 시간 반쯤 걸렸다.
갑자기 선착장에서 배를 타느라 반팔옷만 입으신 이창열 감사님이 추위로 고생하여 결국 감기에 걸리셨다. 어디를 가도 따뜻한 긴팔 옷 챙기는 걸 잊으면 안 돼요.
어둠 속에 여행자 거리는 더 이국풍으로 빛나고 우리는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를 찾았다. 홍순유 부회장님과 오랜 친분을 유지하는 분이 운영하신단다.
홍부회장님은 1993년부터 7년 동안 삼환기업 현장소장님으로 ADB 차관공사인 르왕프라방 과 팍몽 간 130 여 KM 다리를 놓는 토목공사를 직접 시공하셨다.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시기에 누구보다 감회가 깊으신 표정,
원래 탕완(Tangvane)사장님 남편과 특별한 인연이 있으셨다. 남편인 현재 분양 루앙시 문화유산국장님이 20년전 건설산업국장으로 재직했기에 업무로 알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별히 반겨주는 사장님의 배려 덕분에 이틀 동안 머물 객실도 넓고 쾌적했다. 말만 게스트하우스지 4성급 이상 호텔 수준이었다. 정원에는 각가지 열대꽃들이 싱그러웠다.
왕궁에서 100m 거리여서 완전히 시내 한복판인 셈, 어디든 걸어서 갈 수 있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현지음식에 라오맥주를 마시며 분위기에 젖느라 야시장 갈 시간이 부족했다. 열시까지라니 서둘러 잠깐이라도 구경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간 화려하고 사람도 바글바글한 게 아니다. 비단 스카프가 가장 많고 장신구에 각종 술에 가방, 도자니, 그릇 등이 즐비하다. 상인들은 거의 몽족 이라는데 거의가 여성, 나이 어린 여성도 많았다.
여행자에게는 값을 높이 부르니 흥정을 해야 한다지만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고 에누리도 많이 해주지 않았다. 빨리빨리 눈호사만 대충 하기로 했다 다음날 하루 시간이 더 있으니 기념품은 나중에 사도 되니까.
아침에 매콩강 옆에서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쌀국수를 먹었다. 국수발이 굵은 것은 쎈야이, 가는발은 센노이라고 하는데 닭국물이 진했다. 한 그릇 2,000원 남짓.
왕궁박물관부터 관광을 시작했다. 입구 오른쪽에 50m쯤 되는 나무기둥을 휘감으며 환하게 핀 꽃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꽃분홍빛이 화려한 뷰겐베리아이다. 꽃인 줄 알지만 사실은 잎새가 분홍꽃처럼 변한 것 뿐이고 실제 꽃은 하얗게 아주 조그맣다. 모든 짐을 보관하고 맨몸으로 왕궁박물관에 입장했다.
씨싸왕웡 왕 시절 100년 전세워진 왕궁으로 유럽과 라오스 양식이 섞인 건축양식. 1975년 공산주의 혁명 이후 박물관으로 개조됐으며 왕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품은 상징과도 같은 불상인 ‘파방’으로 에메랄드 불상과 함께 씨암(태국)에 빼앗겼다가 돌려받았단다. 새빨간 바탕에 사람과 코끼리와 열대나무들이 조화를 이룬 모자이크 벽화, 각국 외국에서 보낸 선물 등 볼거리가 많았다. 입장료는30,000킵(3,900원)이었다.
왕궁입구에서 바로 길을 건너 328개 계단을 오르면 푸씨사원 정상.
이 지역 정신적인 중심이자 시민들의 안식처 역할을 하는 언덕으로 정상에 황금탑 ‘탓 쫌씨’가 있다. 이곳 어디서나 보이는 28m 높이의 탑은 삐마이라는 신년행사 때 행렬이 출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정상에서는 메콩강과 루앙프라방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한눈에 보였다. 특히 발 아래로 붉은 지붕이 눈에 띄는 가지런한 유럽식 주택이 이국적이었다. 해돋이도 유명하지만 노을 지는 모습이 황홀하다는데 노을 구경이 취미인 내가 그냥 갈 수 있나.
노을 지는 시간에 맞춰 다시 오면 오전 입장권을 사용해도 좋다는 약속까지 받아놓고 가지 못해 아쉬웠다. 정상에서 SBS 광주방송 취재진을 만났다. 동남아시아 소수민족의 생활상을 집중 취재하는 중이었다. 입장료는 20,000킵.
이제 남쪽으로 30㎞ 떨어진 꽝시 폭포로 향했다. 시골 하이킹 코스를 연상케하는 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관광객이 자주 눈에 띄었다. 폭포 가는 길에 자줏빛 바나나꽃과 굴비를 매단 것처럼 아래로 길게 엮인 ‘헬리코니아’란 꽃이 특이했다. 열대림 키다리 나무 군락 울창한 수풀 속에 있어 더 아름다운 폭포는 높진 않아도 아름다운 모양으로 인기가 높았다.
저녁에 르왕프라방 문화유산국장님이신 Mr Bounyang 께서 만찬에 일행을 초대해 주셨다. 메콩강가 해물 뷔페식당에는 외국인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20년 동안 변함없이 국경을 뛰어넘어 친분을 유지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분양 국장님은 러시아와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여 외국어에 능통하고 부인도 그에 버금가는 수준급 실력있는 경영인이었다. 한국을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다는 사장님은 22세인 막내아들이 한국인 신부를 원한다고 귀뜸하셨다. 비엔티엔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34세인 큰 아들에게서 손자와 손자를 얻었다고 자랑하는 모습도 우리네 할머니를 닮았다.
루앙에서의 마지막 밤, 야시장을 제대로 구경하기로 했다. 전부터 갖고 싶었던 은으로 만든 앙증맞은 빗을 샀다. 작은 병 찹쌀술 라오라오와 쌀와인도 샀다. 상인들은 하나같이 손에 계산기를 들고 있었다. 워낙 화폐 단위가 커서 달러와 킵으로 환산하기가 어렵고 말이 안 통하니 계산기가 통역을 대신 하는 셈이었다.
모양이 특이하고 다른 가게보다 가격을 싸게 파는 아가씨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부드럽고 아리따운 이 아가씨는 조용하면서도 당당했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자 정중하게 거절하는 모습에도 품격이 담겨있었다. 그래도 살짝 찍으니 살포시 웃음을 띄며 일에 열중했다. 서울에 와 아가씨에게 산 작은 손잡이 실크가방을 들고 다니니 예쁘다며 어디서 샀느냐고 탐을 내는 사람이 많았다. (몇 개 더 사가지고 올 걸 하나에 4,000원도 안 주고 산 건데... 담에 가면 꼭 사서 선물 할게요.)
무늬가 강렬하고 화려한 사각접시를 살까 망설이다 짐을 줄이려면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13세 프랑스 소년 형제를 만나 사진을 찍었다. 엄마와 함께 마르세이유에서 온 형제는 곽노익 사장님이 가진 사진기에 흥미를 갖고 직접 찍어보고 찍힌 모습을 확인하며 즐거워했다.
새벽 스님들이 탁발하는 모습을 보려고 숙소 앞을 서성댔다.
새벽공기는 상쾌하지만 차가웠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거리에 탁발에 보시할 물건을 파는 상인이 먼저 다가와 잠시 기다리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어깨에 길게 보시물건을 매달고 다가오는 상인에게 찰밥과 바나나와 과자를 샀다. 어느새 할머니들이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외국인과 우리에게도 앉으라고 자리를 내주었다. 신호도 없이 행렬이 다가오기 때문에 한 번 지나가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옆에 앉은 25세 독일인 아가씨는 남자친구와 여행 온 지 사흘째인데 곧 베트남으로 떠난다고 했다.
탁발을 하러 나온 어린 스님들은 맨발에 반팔 차림이었다.
자식을 보듬는 마음으로 보시하는 모습이 거룩한 의식으로 가슴에 다가왔다. 스님에게 음식을 조금씩 나누며 내머리도 개운해졌다.
조금 떨어진 새벽시장 구경에 나섰다. 갖은 채소와 과일 건어물 공산품 생선 실크스카프 등새벽부터 인산인해 북새통이다. 누가 라오스 사람을 게으르다 하겠는가.
루앙프라방을 떠나 비엔티엔으로 돌아와 서울로 돌아가는 날,
메콩강가에서 쌀국수와 꽈배기, 튀김과 소시지로 아침을 먹었다.
닭국물과 소시지 맛이 약간 이상한지 곽노익 사장님이 수저를 놓았다.
문제있는 음식은 먹지를 말아야 하지만 식성 좋은 내가 그대로 먹은 게 화근,
비엔티엔 가는 차안에서 배탈이 났다. 어쩔 수 없이 중간에서 여러 번 쉬게 되었다. 좀 나아진 것 같아 중간에 산속 휴게소에 들러 점심 대신 코코넛에 빨대를 꽂아 시원한 물을 마셨더니 다시 배탈... 배탈에 과일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걸 몰랐나.
중간에 버스가 도로 중앙에 미끌어져 감짝 놀란 순간도 있었지만 노련한 기사 덕분에 무사히 비엔티엔에 도착했다. 노랗던 해가 주황빛으로 물들더니 나뭇가지 사이로 숨어버리는 시각, 오후 여섯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저녁만찬을 위해 홍부회장님 수양따님이 운영하는 공항 근처 불고기 식당
<포이샨>에 들어섰다.
입구를 들어서면 왼쪽에 식당홀이 있고 야외식당이 딸린 넓은 정원을 지나면 살림집이 있었다. 사장님의 안내로 집안으로 들어섰다.
(라오스 상류층의 대저택은 이렇구나)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휘황한 거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십오년 전 셍니밋 사장님은 홍부회장님 부하직원인 한국인과 결혼하여 한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한국말도 조금은 했다. 서울에서 불고기 요리 비법을 배워 라오스에 돌아가 불고기 식당을 차렸는데 얼마나 사업이 번창한지 수백 명이 들어가는 홀에도 야외 테이블에도 꽉 찬 손님들. 현지인들이 가장 가고 싶은 음식점으로 꼽을 만큼 고급스런 장소로 가격도 꽤 비싸다는데 손님이 줄 섰으니 대단했다. 배탈로 고생하는 내게 약을 가져다 주시던 사장님의 친절이 고마웠다.
정원에는 무리지어 핀 주홍빛 러캠꽃이 수줍게 인사를 했다. 이 모습을 몰래 엿보던 백일홍꽃이 잠깐 토라지더니 금세 반색을 하며 맞아주는 게 아닌가!
한국에서 씨앗을 가져다 심었다는 백일홍 꽃무리는 떠나온 한국을 향한 마음을 우리 일행을 보며 달래고 있었다.
사흘간 헤어졌던 일행과 만나 반갑게 만나 식사를 했다.
11시 40분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외무부 외사처 직원인 팽송과 카이손이 나와 수속을 도와주었다.
외사처는 외국 귀빈들이 라오스를 방문할 때 의전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방문 내내 행사 일정과 숙소 음식 차량 등 세심한 도움을 받았다.
우리 협회가 그동안 기여한 활동에 명성과 평판이 어우러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초대 주한라오스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다 귀국하여 현재는 라오스 외무부 부국장 이신 Mr Amphay 께서 이제 곧 외국에 대사로 임명되어 현지로 떠나기 전 공항으로 배웅을 나온 사실도 잊을 수 없다. 자기가 부임하는 나라에 꼭 방문해 달라며 오회장님을 끌어안는 광경은 감동적이었다.
행동과 신뢰와 설득이라는 과정을 거쳐 맺어진 이 특별한 모습을 우물 안 개구리들에게 보이고 싶었다.
완벽한 하나가 아닌 불완전한 두 나라가 협력으로 이루는 미래를 상상해 보라.
파트너십은 성공률을 높이고 실패율을 낮춰 발전과 상생의 장으로 나아가리니,
두 나라가 가진 힘을 맘껏 발휘하기를 빌며 비행기에 올랐다.
마주치는 힘에 밀려 솟구치는 불꽃이 밤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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